정부에서 지원된 연구비로 연구를 한 결과가 한 개인에 의해 전용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공공 정책의 명백한 실패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역작용이 우려된다는 식으로 견해를 피력하는 목소리를 여러군데서 들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6/13/2007061301017.html
이 글의 필자가 지적하는 가장 큰 역작용은 연구자의 창업의지를 유발하지 못하는 보상체계이다. 이를 강조하면서 들고 있는 예가 미국의 경우이다. 미국에서는 대학의 연구 결과를 이용하여 엄청난 수익을 거둔 사례가 많이 있으며 이러한 수익은 다시 대학에 배분되어 연구의 활성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이 부분에서 필자는 공공성에 대해 큰 오해를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기술의 공공성
기술의 공공성은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첫째는 기술이 시장에서 성공하여 그것이 상당한 수익을 낼 경우 그 수익이 공공의 복지를 위해 쓰이는 경우이고 둘째는 기술 자체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설계된 경우이다. 우리는 위 글의 필자가 기술의 공공성을 첫번째 의미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필자 논리대로라면 결국 '기술의 성공 = 창업 = 시장에서의 성공 = 수익률 = 공공의 이익'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분배'의 문제가 언급되지 않는 한 시장에서의 성공이 공공성, 즉 공공의 이익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특히나 한국처럼 부의 재분배 시스템이 낙후된 나라에서 경제가 활성화되면 무조건 사람들이 잘 살게 될 것이라는 견해는 환상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연구의 상업화는 기술 자체의 공공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 매우 우려되는 풍조이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기술이라는 것이 단일한 발전 경로를 갖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수많은 사례 연구를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컴퓨터나 핸드폰의 경우 수많은 기술들이 시장에 쏟아져나오고 있지만 정작 대부분의 기술들이 그것을 구입할 능력이 되는 사람들에게만 전용되고 있다. 즉, 모두에게 유익한 기술이라는 환상은 이미 깨어지고 있으며 사용자가 절실하게 필요로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기술 또한 점차 줄어들고 있다. 오히려 소득 격차에 따라 기술의 양극화 역시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성은 기술을 하나의 필요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치 혹은 과시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더욱 팽배하게 만들고 있다. 결국 연구의 상업화는 기술 자체의 공공성을 크게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
대학과 R&D
설령 필자의 생각을 그대로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대학에는 그 연구결과가 돈이 되지 않는 연구들이 매우 많다. 이런 연구들의 경우 가뜩이나 지금도 설자리가 좁다. 이러한 한계를 이겨내기 위해 없는 수익성을 만들거나 수익성을 거짓으로 부풀리거나 연구 결과를 과대포장 하는 식으로 연구 목적을 합리화하는 사례를 우리는 현실에서 수없이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반론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연구 결과의 수익은 현실적으로 그러한 연구들에게도 혜택을 줄 것이다'라고. 물론 단기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것은 자칫 R&D 자체를 연구의 수익률이라는 변수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행여 공황이라도 발생한다면 가장 먼저 연구가 중지될 분야가 어디인지는 안봐도 뻔한 노릇이다. 결국 R&D에 필요한 비용이 연구의 수익률에 의해 의존하게 되면 R&D 자체가 수익률이 높은 분야에 몰릴 확률이 매우 높다.
물론 지금도 기술 혹은 연구가 시장에서 성공하게 되면 수익이 발생하게 되고 이러한 수익을 국가를 운영하거나 공공적인 성격의 연구를 진행하는데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하게 기술이전에 의해 기업이라는 단위에 의해 수행되는 경제행위이다. 대학 자체가 기업의 연구소처럼 운영되는 것하고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기업이 과감하게 공공적인 성격의 연구개발에 자본을 투자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결국 적어도 공공성을 띤 대학의 연구라면 연구의 수익률과 무관하게 보장되는 것이 옳은 길이며 더군다나 국가에서 100% 지원을 받고 있는 국립대학의 경우라면 더말할 나위가 없다.
연구자들을 한탕주의로 내몰지 말라
KAIST는 국립대학이다. 공공의 세금으로 운영된다면 그 결과 역시 공공을 위하여 쓰여져야 한다. 필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연구자의 창업에 대해서는 긍정하고 있다. 이것은 시장에서의 성공 = 공공의 이익이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오류이며 이것이 시장에 대한 무지이자 공공성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생각이라는 점은 위에서 이미 지적하였다. 결국 이번 사건을 정리해본다면 공공의 연구를 해야할 연구자가 일시적인 한탕주의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공공의 기대를 저버린 사건에 불과하다. 정녕 그것이 어떤 우려를 담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먼저 기업의 수익이 사회의 환원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모순적인 한국 사회의 구조를 들여다봐야 하며 그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가 얼마나 공공성을 가지는지에 대한 면밀한 탐구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기업의 이익이 곧 공공의 이익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기형적인 시장 경제 하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대학에서 기업의 R&D를 하고 싶다면 적어도 그러한 수익률로부터 자유로운 국립대 하나 정도는 만들어놓고 그런 연구를 장려할 일이다. 그래도 비판하고 싶다면 이처럼 KAIST 연구자 조차도 한탕주의가 아니면 연구 의지 조차 가지지 못하는 연구자 사회의 분위기를 비판할 일이다. 혹은 그러한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는 필자 스스로의 견해부터 반성하라.

댓글을 달아 주세요